. 칼럼 .
신(新) 매체시대 새로운 문학을 위한 테제
- ‘다매체시대 소설문학의 출구는?’문학세미나에서 한 발언
김 혁(소설가,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90년대 말 경, 해외 모 문학지에서 “래년부터 우리는 원고지가 아닌 이메일 투고를 전격 실시합니다.”라는 작품공모를 보고 적이 놀란적이 있었다. “천일야화”같은 이야기인줄로 알았는데 불과 2년도 안되여 우리 문단에서도 컴퓨터 창작과 편집이 본격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만년필을 던지고. 컴퓨터로 타자하여 문학지에 실린 첫 작품이 2000년 순수문학지 “도라지” 톱에 실린 중편소설 “라이프 스페이스”(生活空间)인줄을 난 경희와 함께 갈무리하고 있다. 그리고 문단에서 그 누구보다 앞서 문학, 뉴스, 력사로 분류하여 무려 다섯개의 블로그를 쟝르 별 만들어서는 거의 20년간 꾸려왔다.
그러나 이제 위챗이 우리의 일상의 공간에. 문학공간에 비집고 들기 시작했다.
“촉새 황새 따르기”로 뒤미처 스마트폰에 문학 위챗계정을 만들었다. 문학 블로그와 더불어 나의 신작들을 실시간 올리면서 독자들과 새롭게 만나고 있다.
나의 위챗계정의 이름은 고향 룡정에 있는 오프라인의 나의 서재의 이름과도 꼭 같은 “청우재(听雨斋)”, 그 키워드를 문학, 력사, 영화, 음악, 동물 등등으로 정하고 매일이고 게시물들을 나름 선정해 올리고 있다. 작은 핸드폰 속에 세상만사, 천태만사, 사방오방을 다 담으면서 구지욕에 넘쳐 “작은 두레박에 우물 통째를 담으려”하고 있다.
문단 처음으로 위챗계정에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련재했다. 십여년 전에 출간되였던 나의 첫 장편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수상의 특혜로 나온 책이라 겨우 200권밖에 출간되지 못했는데 위챗련재를 하면서부터는 일 조회수가 거의 천명에로 치달아 올랐다. 게다가 댓글 기능까지 있어 독자들과의 소통도 원활하게 가능했다.
문학을 담는 그릇은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또 변할 수 밖에 없다. 죽간(竹简)이나 양피지(羊皮纸)를 사용하던 시대에는 값싼 종이 책에 외려 령혼이 없다고 보았다. 그처럼 모바일 기기를 문학의 “적”으로 생각하는 부정적,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새로운 방식을 문학의 상실이라고 보면 더구나 안된다.
눈부신 통신수단의 발달과 미디어 외연의 확장과 더불어 문화와 예술의 패러다임은 바뀌고 있다. 전통 매체의 권위성과 독선이 희석화 되고 문학단체와 작가, 독자 등이 직접 미디어를 운영하고 작가,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들어섰다.
따라서 탈이데올로기, 문학과 예술의 대중화, 디지털화 등으로 바뀌여지는 오늘날의 문화풍토에서 전통문학의 책무가 더욱 절실하게 되였다.
이제 우리 문단도 주류문단과의 접목, 세계화로의 출두를 위해 다양하고 선진적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세계 각지의 독자들에게 보다 손쉽게 조선족문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블로그, 위챗계정에서 독자들과 만나는 전자작품은 시효성, 접근성, 범용성 등에서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박봉을 털어 자비로 낸 종이책을 지인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고 보면, 시장류통이라는 환절이 탈락되고 책이 더욱 많은 독자군체와 대면할 수 없어 소통이 단절되였던 문단풍토에서 벗어나 문학이 새롭게 독자들과의 만남과 호성을 불러내는 기꺼운 변화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인터넷, 위챗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의 발랄한 운용은 아직도 오지, 변두리 문학에 머물러 있는 우리 문학의 광범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전통문학과 새로운 미디어의 종속관계에 신경을 도사릴 것이 아니라, 응당 쌍방향적이고 복합적인 새로운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변혁기의 필수적 변화는 형식의 쇄신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함으로 새로운 창작방식, 새로운 소재, 새로운 문체를 지니고 새로운 류통전략으로 새로워진 독자들의 미뢰(味蕾)와 만나야 한다.
지난세기 90년대로부터 문학의 영향력이 급격히 격하되고 문학 령역이 축소되였다. 우리말 문학지가 7만부의 발행수치를 기록하고 혼인구애광고 뒤에 “문학을 애호함”이라고 기어이 적던 그 풍토는 이미 툽상스러운 6권 사전 같은 두툼한 향수 속에 갈무리되고 말았다.
작가와 독자들이 문학의 정체성 문제에 직면하고, 모든 것이 미디어로 환원되고 있는 변혁기의 오늘날, 작가는 이 모든 혼란에 미상불 대응해야 한다. 문학의 위기를 목메여 부르짖는 대신, 득달 같이 다가 온 기계혁명에 적극 부응할 때 그 것은 위상이 바닥에 내쳐진 우리의 문학을 새롭게 촉발시키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만이 갖고 있는 문화의 토속적인 정서와 력사의 중후한 무늬를 세상에 알리고자 오늘도 컴앞에서, 혹은 스마트폰을 들고 불면의 밤을 새우는 작가와 독자들이 미디어의 미래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가 소망해 본다.
“연변일보” 2018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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